[기고] "왜 씨앗부터 심나?"- 이승민 메이커
[기고] "왜 씨앗부터 심나?"- 이승민 메이커
  • 정회선
  • 승인 2019.05.23 14: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무엇이든 ‘처음부터’ 할 수 있는 자연을 느끼게 하고 싶어서 ‘씨앗부터’ 틔우기 시작했습니다.”(이승민 메이커)

다들 내게 “왜 씨앗부터 심냐?”고 한다. “잘 자란 모종을 심으면 추수를 바로 할 수 있는데!” 하면서. 대부분의 사업은 이렇듯 가져와서 키우고 팔아먹기다. 그렇게 우리는 중계무역의 강국이 되었다.

3월에 아이들 학교에서 운영하는 텃밭을 분양받았다. 160여 텃밭에서 사람들은 모종을 옮겨 심고 있었다. 우리는 사온 씨앗을 하나둘씩 솜 위에 올리고 촉촉하게 물을 적셨다.

일주일이 지나고 2주 째가 되니 몽글몽글 싹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윽고 한달이 되자 쌍떡잎이 확연히 펼쳐졌다. 이 과정을 아이들은 매일 관찰했다.

4월이 되어 뿌리가 1센티미터쯤 되었을 때, 텃밭에 옮겨 심었다. 아이들의 친구들과 학부모 및 학교 관계자들은 조롱 섞인 야유를 숨기지 않았다. 아이들은 친구들이 “이게 뭐야?” 한다며 푸념을 하였다. 나는 묵묵히 잡초를 뽑아 주고 물도 주었다.

하루는 교장이 다가와서 가르치듯이 물었다. 

“모종을 심으셨어야죠. 왜 씨앗부터 시작하셨어요?”

나는 대답했다.

“언젠가부터 우리 아이들은 다 자란 것을 옮겨 심어 풍성해지는 과정에 익숙해졌습니다. 씨앗과 알에서 시작하는 생명의 신비로움은 책에서만 배우고 있지요. 이것은 제조업에서도 나타납니다. 개발하기보다는 가져와서 조립하는 게 다반사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기술이라고 합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이 ‘처음부터’ 할 수 있는 자연을 느끼게 하고 싶어서 ‘씨앗부터’ 틔우기 시작했습니다.”

“아!”

교장은 단 마디 외침과 함께 90도 인사를 하고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며 되돌아섰다.

그 후, 아이의 텃밭은 교육 현장이 되었다. 아이들은 점심시간에 다들 몰려와서 매일 자라나는 과정을 관찰하면서, 다 같아 보였던 쌍떡잎이 각기 다른 모습의 색과 모양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익히고 있다.

이승민 메이커가 아이와 함께 가꾸는 텃밭(사진=이승민 메이커)

소위 '한강의 기적'이라고 하는 한국은, 대부분 적당히 만들어진 것을 가공하여 유통하는 것에 지난 30년을 보냈다. 모종을 심어 풍성하게 해서 추수를 하듯.

한우 중 많은 수가 6개월 미만 소를 수입해서 기른 것이다. 스마트폰의 부품은 49%가 수입부품이며 현대차 부품의 80%는 글로벌기업의 솔루션이다. 빠르게 오르면 과정을 볼 수 없다. 결국 기술이 남지 않는다.

여러 제조업체 대표들이 중국과 베트남에 기술을 뺏겼다는 말을 한다. 우리가 처음부터 기술을 익히고 발전시킨 것이 얼마나 되나? 대부분 가져와서 조립을 했을 뿐 아닌가? 그저 '생산 기술'만 쌓았을 뿐이다.

앞으로의 30년은 씨앗 키우기를 해야 한다. 40년 후를 위해서. 기술의 정체는 퇴보를 초래한다. 결국 남에게 의지하거나 기생해야 하는 속박을 감수해야 한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진짜 씨앗을 키워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 기술강국의 뿌리가 내릴 것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설계는 하지 않고 조립만 하고있다. 어셈블리만 하고 있는 것이다. 20년 동안 하드에 쌓여 있는 부품들을 여기에 붙이고 저기에 붙이고 하면서 스스로 퇴보하고 있음을 느낀다.

스피라나 예쁘자나* 혹은 메소드 같은 프로젝트는 개발에 가까웠다. 더 나아가기 위해서 다른 사업군의 제품을 개발해 보았지만, 더 강한 퇴보를 느낄 뿐었이다.

1930년 이후로 새로운 것이 없다. 이제 진정한 모험을 해야 할 시기가 왔다.

기술이라는 것을 부린지 19년. 20년이 되기 전에 씨앗을 뿌리리라. 200년 동안 자라나는 나무를 키우기 위해서.

(기고='육아하는 메이커' 이승민, 정리=정회선)


예쁘자나 2010년 개발된 전기차. 2010년 전기자동차 무충전주행 한국대회에서 503.2㎞를 달려 한국기네스 기록을 세웠다.


애독자 메이커님의 활동과 행사를 이미지와 함께 메이커뉴스에 알려주십시오. 어떠한 메이커 소식도 소중하게 다루겠습니다. 
ⓔ editor.makernews@gmail.com 페이스북메시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